즐겨찾기+ 최종편집:2018-11-10 오후 05:53:22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전체기사
커뮤니티
독자투고
공지사항
구독문의
자유게시판
 
뉴스 > 라이프
123년전 이름모를 의병들을 기억하자
을미의병출진 123주년 ‘제22회 양평의병추모제향’
동부중앙신문 기자 / news9114@hanmail.net입력 : 2018년 10월 29일(월) 10:57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 동부중앙신문
최근 막을 내린 tvN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은 구한말 영국 언론인이 경기도 양평군 지평 인근에서 촬영한 실제 의병 모습을 재현해 깊은 감동을 안겼다. 
‘미스터 션샤인’ 드라마가 끝나자마자 포털 검색어 1위에 올랐다.

외신 기자가 의병들을 인터뷰하고 단체 사진을 찍는 극중 장면에서, 1907년 영국의 맥켄지 기자와 의병의 실제 대화를 대사로 썼고, 진짜 사진과 비슷하게 연출한 것이 화제가 됐다. 드라마를 둘러싼 수많은 화제거리에서 시청자들은 의병이란 존재에 가장 많은 관심을 가졌다는 뜻이다. 구한말 혼돈의 시대를 그린 이 드라마의 주인공은 결국 ‘아무개’ 의병들이었다. 의병들은 자신을 미끼로 내던져 동료와 나라를 구하고, 빵을 굽다가, 인력거를 끌다가 총을 들었다. 무장한 일본군 앞으로 질 걸 알면서도 두려움을 감내하며 전진하는 모습에 시청자들은 눈물을 쏟았다. 결국 이 드라마는 민초의 힘을 부각했다.

의병이란 존재가 우리의 역사가 어려움에 겪을 때마다 들불처럼 번져 일어났던 사실상 역사의 주인이라는 걸 그려낸 <미스터 션샤인>은 본래 남아 있는 의병 사진 한 장에서 시작했다.

1930년대 항일 운동을 하던 이야기는 많지만, 1905년 조선이 일본에 넘어가기 전 항거하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은 많이 남아 있지 않다. 방영 전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은 “신미양요를 기준으로 의병에 대해 조사했는데 마음이 아팠다. 실제 기록을 찾아보고 그들의 모습을 기록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다”고 했다. 그 민초의 넋을, 당시의 의병들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의병들을 기억하는 만큼, 친일세력도 잊어서 안 된다. 친일파의 묘는 국립묘지에 있고, 의병들은 어디 묻혀 있는지도 모른다.
ⓒ 동부중앙신문
우리는 어차피 죽게 되겠지요.
그러나 좋습니다.
일본의 노예가 되어 사느니보다는
자유민으로 죽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위 사진을 찍은 영국인 기자 매켄지와 인터뷰를 한 의병 부대의 의병장이 남긴 말이다.
1907년,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Daily mail)>의 극동 특파원으로 조선에 파견된 프레더릭 매켄지(F.A. Mckenzie)가 양근군 지금의 양평군에서 만난 의병들을 찍은 사진이다.
중앙에 다른 사람의 의상과 대비되는 정모와 코트를 착용하고 환도로 보이는 칼을 멋들어지게 어깨에 댄 사람이 보이는데, 그는 해산된 뒤 자신에게 지급된 피복과 장비를 그대로 챙겨 의병에 합류한 구 대한제국군 육군 장병들 중 한 명이다.
후에 이 사진은 항일 무장 투쟁 운동의 상징과도 같은 유물이 되었다.

양평은 을미의명의 발상지다.
양동은 당시 지평현 상동면이었으므로 지평의병이라도고 한다.
당시 일본은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한국의 국권을 농락하더니, 마침내 1895년(乙未) 명성황후를 학살하고 단발령을 강제로 실시했다.
이에 의분을 참지 못한 양평의 민초들이 의병을 일으킨다.
ⓒ 동부중앙신문
당시 곡수에 살고 있던 괴은 이춘영은 지평현 상동면(양동) 퇴앙 안종응과 의병거의를 상의했고, 지평현 장둔면(청운) 김백선 장군은 지평관아에 의병거의를 청하였으나 지평관아는 의병거의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춘영 장군과 김백선 장군은 지평포군 400명을 모집해 창의 하여 원주 안창으로 이동해 을미년 11월 28일 지평의병의 깃발을 들었다.
지평 금리(월산리) 금계 이근원 선생(화서 이항로 선생의 후학)은 문파의 전략을 지원하였고 그에게서 학업을 닦은 안승우 장군(안종응의 아들) 등 후학과 평민들이 합류하여 의병수가 1천여 명에 달했으니 사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원주관아 점령에 이어 제천, 충주, 단양 등지에서 크게 승리하였고 인근지역 의병봉기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후일 지평의병은 17세의 지평 소년의병 손용문(손덕화 의병의 아들)과 금계선생의 후학인 천낙귀 등 평민들과 함께 항일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
<국맥 지평의병 발상지 표석문 중에서>


전국에서 가정 먼저였다.
양평군 양동면은 명실상부한 1895년 을미의병(지평의병)의 발상지였다.

ⓒ 동부중앙신문
지난 24일 ‘을미의병출진 123주년 제22회 양평의병 추모제향이 있었다.
양동면 석곡리 양평의병묘역에서 거행했다.
이날 추모제는 양평 을미의병정신 현창회와 양평문화원 양동분원의 주관으로 진행됐다.
또 신교중 양평의병기념사업회장과 정동균 군수를 비롯해 지역 역사의 현장을 직접 체험하기 위해 방문한 양동중고등학교 학생 100여명과 주민 200여명도 참석했다.

정동균 군수는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는 나라를 위해 살신성인의 정신으로 산화하신 선열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항상 가슴속에 새겨야 한다.”며 추도사를 전했으며 양동면 유점사 주지 수산스님이 천도재를 올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의병의 넋을 기렸다.

양평군은 1997년 처음으로 추모제를 거행한 이래 지금까지 매년 추모제를 거행해 오고 있으며 올해로 22회를 맞이했다.
ⓒ 동부중앙신문

동부중앙신문 기자  news9114@hanmail.net
- Copyrights ⓒ동부중앙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겸직금지, 의원직 내려놓던지...,
“통일, 합리적인 국민공감대 형성 ..
14년동안 이·통장 처우 변화 없었..
전기히터, 전기장판, 전기열선 각별..
“나는 왜, 창의적이지 않을까”
자비나눔김장축제
양평군, 경기도 농정업무 장려상
여주시 교육참가단, ‘독일 혁신아..
구례 자연드림파크를 찾아
이불 밖은 위험해 시즌2
최신뉴스
“통일, 합리적인 국민공감대 형성..  
14년동안 이·통장 처우 변화 없었..  
겸직금지, 의원직 내려놓던지...,  
구례 자연드림파크를 찾아  
양평군, 경기도 농정업무 장려상  
양평군, 민선7기 첫 언론 정례 브..  
여주시 지난해 유수율 81.81%  
정부혁신 우수사례 발굴 경진대회  
여주시 교육참가단, ‘독일 혁신아..  
복지사각지대 발굴, 가스 안전점검..  
금사복지회관 리모델링 논의  
버스정류장 금연안내 표지판 설치  
점동면 ‘얼굴 없는 천사’  
“나는 왜, 창의적이지 않을까”  
이불 밖은 위험해 시즌2  

인사말 편집규약 윤리강령 고충처리인제도 개인정보취급방침 청소년보호정책 기사제보 광고문의 제휴문의
제호: 동부중앙신문 / 명칭: 인터넷신문 / 주소 : [우편번호:12634] 경기도 여주시 강변유원지길 45 (지번 : 여주시 연양동 414)
발행인 : 이창기 / 편집인 : 이창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창기 / 등록번호 : 경기다 01205 / 등록일자 : 2010년 1월 28일
mail: news9114@hanmail.net / Tel: 031-886-9114 / Fax : 031-882-6177
Copyright ⓒ 동부중앙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